한국일보

기도(棋道)

2015-10-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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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기도(棋道)’. 바둑의 도를 말한다. 바둑의 고수가 되려면 바둑 기술을 연마하기 전에 올바른 기도부터 배워야 한다. 국수 조훈현 9단은 일본인 스승 세고에 겐사쿠(漸越 憲作)에게 심오한 기도를 배웠다.

조훈현은 열한 살 때 세고에 선생의 내제자로 입숙하여 9년을 사숙했다. 세고에 선생은 제자 조훈현과의 대국과 가르침에 인색했다. 대국으로 바둑을 배운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다. 어린 조훈현의 마음은 초초하고 답답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세고에 선생이 조훈현을 불렀다. 선생은 말했다. “내가 너에게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느냐? 답이 없는 게 바둑인데 어떻게 내가 너에게 답을 줄 수 있겠느냐? 스스로 묻고, 그 답을 네 스스로 찾아라.”

일본 최고 고수인 세고에 선생은 내제자 조훈현에게 바둑의 내밀한 비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건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는 식의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단지,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답을 찾아나가라는 기본 틀만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조훈현은 세고에 선생의 교육방침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별 도리가 없었으므로 그대로 순종했다. 그러다가 조훈현에게 큰 위기가 닥쳤다. 세고에 선생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내기 바둑을 한 것이다. 그것도 조훈현이 2단이었을 때, 6단을 가진 대 선배와 함께 말이다.

내기 바둑은 4단이나 상급인 선배의 간청으로 이루어졌고, 한 판에 일본 돈 100엔이 걸린 3판 2승제였다. 소문을 들은 연구회 멤버들이 여기저기서 우르르 몰려들었고, 조훈현은 수많은 프로들 앞에서 내리 여섯 판을 이겼다. 600엔이 조훈현의 손 안에 들어왔다. 조훈현은 그 돈을 한사코 거절했으나 상대방은 돈을 놓고 성급히 자리를 떴다.

며칠이 지나 세고에 선생이 조훈현을 불렀다. 오래 생각한 듯 목소리는 차분하고 준엄했다. “내기 바둑을 두었느냐?” “네”. 조훈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지금 내 집을 떠나라. 나와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니 한국으로 돌아가라.”

파문을 통보받은 조훈현은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을 하면서 스승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매일 사죄의 전화를 드리며 기다렸다.

열흘 쯤 지났을 때다. 스승의 부인으로부터 제자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조훈현은 질풍처럼 달려가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세고에 선생은 두 눈을 감고 조용히 말했다.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네가 제 1인자가 될 재목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문제는 재주가 아니라 인품이었다. 이 녀석이 바둑 명인에 걸맞는 인격과 품위를 갖출 수 있을까, 이것을 늘 생각해 왔다. 너는 명심해라. 인격적 결함을 가진 자는 바둑의 고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조훈현은 이런 방식으로 세고에 선생의 슬하에서 기도를 배워 국수가 되었고, 자신도 이세돌을 제자로 받아 배운 그대로 길러 국수로 만들었다. ‘도’를 중요시 하는 도제 방식은 예수가 12제자를 길러 낸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당신은 리더인가. 아무리 힘들어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의 길을 가는 국수급(國手級) 리더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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