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맴 맴 맴 맴 매~앰!’

2015-08-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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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엊그제가 입추였다. 모레는 말복이다. 무더위는 한층 익어간다. 여름의 한 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한여름 덕분에 귀한 여름손님을 만났다. 지난주 지인들과 라운딩 중 매미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몇 해 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그래서 매미소리가 더 반갑고 정겨웠다. 그 소리는 한 줄기 시원한 청량제 같은 자연의 원음이었다. 여름의 향기와 추억도 배어있었다. 무르익어가는 여름이 싱그러웠다. 그렇게 모처럼 절정의 여름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매미의 생애는 참으로 흥미롭고 놀랍다. 종류에 따라 3년에서 17년 동안 땅속 깊은 곳에서 산다.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나무뿌리에서 수액을 빨아 먹으며 생존한다. 성충이 되기 위해 흙속에서 나온 후에는 나무에 올라 마지막 허물을 벗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땅속에서 견디다가 날아오른다. 그렇지만 생존기간은 매우 짧다. 2-4주 정도 살면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은 후 죽는 것이다.


매미는 수컷만 소리를 낸다. 암컷 매미에게 구애하기 위해서다. 매미 소리는 암컷을 부르는 세레나데의 연주다. 처절한 생존의 울림이며 살아 있다는 절규의 소리다. 종족보존을 위한 사랑의 외침인 것이다.

사극 드라마를 보면 옛 조선의 임금들은 정무를 볼 때 머리에 관을 쓰고 있다. 그 관을 익선관이라 한다. 형태는 꼭대기에 턱이 져 앞턱은 낮고 뒤턱은 높다. 비단으로 싸고 꼭대기 뒤에 두 뿔이 뾰족하게 솟아올라 있다. 뒤에는 날개 모양이 달려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매미를 연상케 한다. 익선관의 ‘선’자를 ‘착할 선(善)’이나 ‘매미 선(蟬)’자로 함께 쓰는 게 그런 이유다.

왜, 익선관은 매미 모양일까? 하필 한여름 짧게 살다가는 매미였을까? 거기엔 나름대로 깊은 뜻이 담겨있다. 매미가 다섯 가지 덕은 갖춘 곤충이기 때문이다.

첫째, 매미의 입은 곧게 뻗은 것이 선비의 갓끈이 늘어진 것 같다하여 문(文)을 상징한다. 임금은 항상 배우고 익혀 선정을 베풀라는 뜻이다. 둘째, 매미는 맑은 이슬이나 나무의 수액만을 마신다고 하여 맑음의 청(淸)을 상징한다. 왕은 탐욕과 사념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셋째, 매미는 농부가 애써 가꾼 곡식이나 채소를 해치지 않는다 하여 염(廉)이라 했다. 임금은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을 말함이다.넷째, 매미는 다른 곤충들과 달리 자기의 영역표시나 집을 짓지 않는다 하여 검(儉)을 상징한다. 임금은 검소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다섯째, 매미는 한 여름 기승을 부리다 늦가을이 되면 때를 맞춰 사라지는 믿음이 있다하여 신(信)이라 했다. 임금은 신의를 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천상의 자리에 있다하여 마음대로 하지 말하는 뜻이다. 이처럼 옛 임금은 매미의 다섯 가지 좋은 점을 염두에 두고 배우라는 의미에서 익선관을 쓰고 국정을 본 것이다.

임금뿐만 아니라 조정의 백관도 매미의 펼친 날개모양을 형상화한 ‘오사모’를 썼다고 한다. 조선시대 관료에게 이러한 관모를 쓰도록 한 것 역시 국사에 임할 때 매미의 오덕(文ㆍ淸ㆍ廉ㆍ儉ㆍ信)을 망각하지 말고 선정을 베풀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뉴욕한인회가 둘로 쪼개진 채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다. 두 명의 한인회장은 여전히 자리만 지키고 있다. 그냥 그렇게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늦었다고 그냥 주저앉아 버리면 안 된다. 우선, 지금이라도 두 회장은 사념과 탐욕을 버리는 맑음(淸)으로 돌아가야 한다. 회장 자리에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그리곤 서로를 헐뜯지 않는 염치 있는 마음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매미가 긴 기다림 후에 짧은 여름을 살듯이 인생도 마냥 길지만은 않다. 지금이야말로 두 한인회장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는 여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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