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르스와 성숙한 시민의식

2015-06-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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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지난해 300여명의 목숨을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는 당국의 빠르지 못한 대처, 세월호 관련자들의 무책임한 행보에서 빚어진 한국최대의 참담하고 불행한 사태이다. 이 사건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끔하게 마무리가 되지 않고 있다.

같은 세월호를 운영하다 침몰사고가 난 일본은 발 빠른 대처로 모든 승객이 무사히 구조되었으며 얼마전에 발생한 중국 여객선 침몰사고의 경우 440여명의 사상자를 내었으나 재빠른 후속대책을 통해 조만간 침몰 선박을 인양하게 된다는 보도이다. 같은 참사를 놓고도 한국과 주변 국가들의 행보를 보면 사건처리 과정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된다.


지금 한국은 계속 확산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모든 국민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다. 한국에서 확진판결을 받은 환자가 중국에 입국하자 중국은 확실한 초등대처로 문제를 초기에 차단했고 사스 발생시 일본도 발 빠른 대처로 초기에 확산을 막았으며 미국 역시 에볼라 감염으로 온 나라가 긴장했으나 초등대처를 잘 해 더 이상의 확산은 없었다.

그런데 한국의 의료진은 초등대처에 실패하면서 오늘의 위기를 자초했다. 지방에서 발생한 1차 감염자가 서울까지 올라와 확진결과를 알아내는 동안 벌써 1주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감염환자가 수 백 명에 이르렀다. 이제 와서 한국은 우왕좌왕 떠들고 난리법석이다. 초당적이 돼야 할 정치권에서는 갑론을박하며 이 사태를 소모적인 정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국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일상생활까지 축소하고 상당수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으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도 오가는 발길이 뚝 끊긴 상황이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서울의 압구정동이나 전통재래 시장, 백화점까지 한산하고 외국인들도 예정된 국내행사에 거의 불참하고 관광객들의 발길도 서서히 끊기고 있다. 감염환자가 돌아다닌 전북 순창의 경우 마을 전체가 격리됐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적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몇 년 전 사상최악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덮친다는 내용의 영화 ‘감기’가 현실화된 듯한 느낌이다. 격리된 사람들은 일대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대재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목숨 건 사투로 시작된 이 영화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외국인 몸속 항체에서 만들어진 백신을 통해 치료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호흡기 감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나게 한다.

그런데도 이번에 처음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가 마스크도 쓰지 않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녔고 자가 격리조치를 받은 여성이 골프 치러 가는 가하면 여행을 다녀온 사람까지 있다. 그로 인해 메르스는 전국 곳곳으로 번져갔다. 가벼운 기침조차 마스크를 쓰고 남을 배려한다는 일본과는 너무도 비교되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도리어 메르스가 확산되게 하고 사망자가 더 나오게 해야 한다. 내수경제를 말아먹고 레임덕이 빨리 오길 기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한국사회에 소리없이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인류와 바이러스의 싸움은 속도전이다. 이제 한국은 인간의 면역체계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노리는 바이러스 공격에 맞서 싸워야 한다. 문제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번개처럼 빠르게 증식되는 점이다. 정부와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야만 이를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메르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지도 모른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모이면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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