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을 디자인 한다

2015-05-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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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어떤 개인이 물건을 살 때, 다음 사항들을 어떤 차례로 생각할까? 즉 물건의 용도, 품질, 색채, 디자인, 가격 등을 어떤 차례로 생각하면서 물건을 선택하는지 알고 싶다. 이는 단순한 생활 습관이나 또는 생각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고, 개성이나 생활환경의 일부분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A는 용도, 품질, 색채, 디자인, 가격의 차례를 고집한다. B는 용도, 가격, 색채, 디자인, 품질의 순서를 따른다. C는 디자인, 색채, 가격으로 차례를 정한다. D는 용도와 가격이 적당하면 디자인, 품질, 색채는 참을 수 있다.


앞에 있는 A.B.C.D의 우열을 정할 수는 없다. 제각기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타인이 추측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생각하는 방향이다.

그런데 요즈음 눈에 띄는 것은 ‘디자인’이 차지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모든 일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정도가 커가고 있음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생활 양상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최소한도의 생활용품은 갖추고 있으니, 새로운 것을 마련하려면 보기 좋고, 멋진 것으로 사자. 다년간 같은 차를 이용하였으니, 월부로 사겠지만 최신 유행형으로 바꿔보자.

우리는 이 아파트에서 10년을 살았으니, 빚을 내어 개인 주택을 마련하더라도 현대적인 건축을 찾아보자. 이런 사고과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용적인 생활용품을 갖추는 일은 일차적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고, 여기에 따라 각종 디자인이 관심사로 떠오른다.

디자인은 무엇인가? 그 뜻이 다양하다. 무늬, 본, 모형부터 시작하여 설계, 구성, 착상, 계획, 의도 도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즉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각종 준비과정이며, 그 토대나 기초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디자인은 어떤 창작물에 특성을 첨부하는 역할과 함께 기능적인 편리함과 아름다움도 겸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서울에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를 신설하였고, 여기 저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 모양이나 소지품도 모두 디자인에 마음을 쓰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환경을 더 아름답고 편리하게 바꾸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모든 것이 크고 작은 디자인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을 설계나 구성으로 생각하든지, 단순한 도안으로 생각하든지 그것이 획기적이고 개성적인 것이 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마음이 자유롭게 열려있기를 요구한다. 드넓은 우주공간을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마음을 말한다. 둘째, 누구하고나 무엇하고나 친구가 되는 것이다. 동식물을 비롯하여 바위, 모래나 물하고도 같이 논다. 셋째,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을 뛰어 넘는다. 머물고 싶은 때, 서있는 곳에서, 만난 것이 바로 친구이다.


어린이들이 제각기 ‘내 방’을 디자인하였다. 그들은 침대, 책상, 책꽂이, 옷장, 놀이 공간 등을 배치하였다. 책상의 위치가 침대 옆, 유리창 앞, 옷장 옆....등으로 나뉜다. 특색이 있던 것은 책상을 방 한가운데 배치한 것이며, 그 이유가 재미있게도 ‘공부하기 싫은 것을 막으려고’였다.

또다른 어린이는 책꽂이의 위치가 침대 바로 옆이었다. 잠자기 전에도 책을 읽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설계한 학교 옥상에는 수영장이 있고, 강당과 체육실은 겸하게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두 교실 사이의 벽이 개폐식이라는 점이다. 또 한쪽 벽면은 특별 장치를 하여서 밖에서 학습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린이 나름대로 생각이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런 생각들이 그들의 창작일 수도 있고, 때로는 타인의 것을 모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새로운 것을 낳는다. 어떤 유형 무형의 디자인이든 우리 생각의 창조물이고, 이는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아름답게, 설계하고 꾸미는 삶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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