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값비싼 목숨

2015-04-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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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현대의 첨단기술은 이제 달나라를 넘어 우주의 비밀까지 곧 찾아낼 기세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인간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마치 하루살이 날 파리처럼, 우리 자신의 생명줄이 언제 끊길지도 모르는 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목숨이 하루살이 하루살이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주장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성숙한 자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2001년 9월11일,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3,000여명의 무고한 목숨이 희생되는 미국역사 최악의 테러참사로 미 전역이 극도의 슬픔과 비탄에 휩싸였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4월16일 전국이 추모분위기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다. 꽃다운 나이의 어린 학생 약250명과 시민 등 300여명이 침몰된 배안에 갇힌 채 그대로 바다에 수장됐기 때문이다.


이들 희생자중 두 명의 유가족이 지난달 맨하탄의 9.11 추모박물관을 방문했다고 한다. 9.11사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보다 훨씬 더 큰 트라우마로 전 세계인에게 생중계되면서 세기의 비극으로 기억되는 9.11사태 피해 유가족들은 자국의 대통령에게 최소한의 행정적 사과 외에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아름다운 선례를 남겼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세월호 1주년을 맞아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청와대를 진입하기 위해 기습시위를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불법시위를 하고 국가질서를 책임진 경찰력을 무력화하는 시위가 과연 세월호 1주기를 기해 그 안타까운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숭고하게 기리는 방법일까 생각해 본다.

물론 사고당시 선박 책임자들의 탐욕과 외면, 정부 및 관계부처의 늑장대응으로 참사를 키웠다는 데에는 그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정부가 나서 마무리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끊임없는 불신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부 유가족들의 지나친 면면을 보면 안타까움 이면에 과연 이것이 진정어린 애도의 뜻에서 나온 것일까 의문이 똬리를 틀게 된다.

또 최근 자신의 돈을 받았다는 정치인 리스트를 주머니에 넣고 목을 맨 성완종이라는 한 기업주의 자살로 대한민국 정국이 온통 혼미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은 마치 죽음을 담보로 국가행정에 대해 끊임없는 의혹과 불신의 불을 지피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이 하나의 정착된 관행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사건은 현재 돈을 받았다는 정치인 하나 없고 돈을 건넸다는 사람은 이미 죽고 없다. 무엇이 진실인지 사건의 전말은 검찰의 수사로 곧 드러날 것이다. 문제는 억울함을 달래겠다고 귀한 목숨을 담보로 온 나라를 벌집 쑤셔놓듯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 것은 죽음의 의미를 승화시켜 자신의 아름다운 행보와 족적을 남기는 것일 것이다. 이를 통해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를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고 가는 것이 온당한 삶의 태도가 아닐런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 안중근이나 유관순의 희생처럼 자신의 죽음을 한 나라의 독립을 이루는데 기여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죽음을 다른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만들고 도를 넘어 사회의 기강까지 무너뜨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1주기를 기해 어른들의 탐욕으로 인해 어이없이 죽어간 학생들과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정부의 철저한 노력으로 사건의 진상이 속히 규명돼 유가족들이 마음에 평안을 찾고 평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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