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5-03-23 (월)
크게 작게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조물주의 솜씨를 기막히게 보여주는 작품이 손이다. 자유자재의 굴신력(屈伸力)과 예민한 감각, 놀라운 탄력과 파악력도 가졌다. 이 손으로 사람이 도구를 만들어 문명을 개발하였으므로 학문적으로는 사람을 ‘공작하는 동물’(Homo Fabel)이라고 부른다. 그 손으로 발명 건설 제작이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손이냐?’ 하는 것이다. 죽이는 손도 있고 살리는 손도 있다. 총을 잡는 손도 있고 호미를 잡는 손도 있다.


로마가 파견한 유대 지방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다. 그의 양심은 예수의 무죄를 믿었지만 제사장 장로 등 종교 지도자들에게 매수된 폭도의 눈치를 보느라고 정치적 행보를 한 것이다. 그는 대야에 물을 가져오게 하고 대중 앞에서 손을 씻으면서 “나는 예수 처형에 책임이 없다”는 어리석은 선언을 한다.

오늘날의 사도신경(使徒信經)이 밀라노 종교회의(서기 390년)에 이미 등장하고 있으므로 최소 1,600년 동안 기독교인들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고백하는 불후의 악명을 쓰게 된 것이다.

악수의 역사는 아주 오래다고 한다. 고대인들은 사냥의 동지를 구할 때 먼저 자기의 빈손을 내 보였다. 어떤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 친구가 되자는 첫 신호였던 것이다. 빈손은 상대를 안심시킨다. 빈손은 피차의 신뢰를 구축한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마음이 빈 마음이다. 모든 죄를 회개한 마음이 빈 마음이다.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에는 성경 용어가 가득 차 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자주 들먹였다. ‘기독교 신앙이 새 나라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히틀러가 자주 쓴 낱말이 충성 헌신 협조이다. 그 모두가 자신을 위한 독재자의 언어였던 것이다.

골리앗을 향하여 물매를 던지는 다웟의 손에는 믿음이 들려있었다. 십자가를 앞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손에는 사랑이 가득하였다. 스승을 팔아 은 30량을 챙기는 유다의 손은 욕심으로 뭉친 손이었다. 엉터리 재판을 해치우고 손을 씻는 빌라도에게는 자신을 위한 정치적 계산이 전부였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이 손을 추적한다.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는 예수의 손, 죽은 아이의 상여에 손을 얹어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는 예수, 코 흘리는 아이들까지 끌어안고 축복하는 예수이 손이었다.

일본 군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의 한을 호소하는 포스터에 정신대 할머니의 험한 손이 그려져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 손은 마디마다 슬픔과 억울함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심리치료의 대가 칼 로저스 박사는 높은 인격의 4대원칙을 말한다.


첫째 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 둘째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 셋째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넷째는 믿고 맡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 품격은 모두 온유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인격은 훼손되기도 하지만 회복되기도 한다. 탐관오리(貪官汚吏) 삭개오의 누더기 인격도 참회로서 회복되었다. 간통에 살인까지 범하여 일그러졌던 다윗 왕의 인격도 회개의 눈물로서 위대한 인격으로 승화 되었다. 성경은 회복의 신비를 말한다. 돌이키는데 너무 늦는 일은 없다. 인격 회복의 결정적인 걸림돌은 미루기와 체면 세우기이다. 돌이키면 될 것을 그 걸 못해 깊은 나락에 빠져든다.

‘제노비즈이 경우(Genovese case)’란 말이 있다. 뉴욕 퀸즈에서 생겼던 일이다. 젊은 여성 키티 제노비즈 씨가 살해되었다. 그녀가 맞아 죽는 것을 서른여덟 명이 창문에서 목격하였다. 그런데 그 중 한명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모두가 한결같이 “다른 사람이 경찰에 알렸을 것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이었다. 가해자는 물론 나쁘지만 구경꾼도 나쁘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