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포효하는 파도, 그 젊음

2015-02-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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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라 <첼리스트>

이맘때는 늘 한국과 미국 모두, 대학 입시 합격자 발표로 고등학교 졸업반 아이를 둔 가정의 희비가 엇갈리는 시기이다. 대학이라는 거대한 세상에 발을 내딛는 후배들에게 격려와 축하를 보내고 싶다.

나의 고3 시기는 소위 말하는 6월 항쟁의 87년 봄과 함께 시작이 되었다. 시국은 내내 불안정하였다지만 6월이 되자, 서초동에서 차를 타고 광화문 앞을 지나 청와대 앞길을 끼고 돌아 평창동에 이르는 등굣길은 참으로 기이한 풍경을 보여 주었다.


아침 공기에 전해 오는 매캐함,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괴괴한 서울 중심부, 말하자면 차도 한복판에 굴러다니는 최루탄 탄피라든지 찢어진 고무 타이어, 전날 저녁의 넥타이부대까지 합류한 가두시위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굴러다니는 현수막 배너 등. 문을 닫아 버린 상점들, 평소와는 달리 현저하게 줄어버린 거리를 걷는 인구, 정체불명의 시위 소모품등… 그런데 참으로 기이했던 것은 오후의 하굣길에는 그런 흔적들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어지러웠던 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가지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양 일상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기한 일은 당시 차기 여당 대선 후보였던 노태우씨의 6.29 선언까지 수일 수 주간 지속 되었다. 그리고 더욱 신기했던 것은 이 모든 눈으로 확인 되는 시국의 현장이 매일 밤 시청하는 9시 TV 뉴스에는 도무지 등장하지 않았었던 것이었다.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소용돌이 속에 있었지만 나는 다음해 원하던 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대학이란 곳은 정말, 너무나도 넓은 곳이었다. 음대에서 자연대 28동을 찾아 가려면 보통걸음으로 15분은 걸어야 한다. 그런데 아크로 광장을 지나 학생회관 옆길을 지나가다 보면 시국에 대한 많은 대자보며 현수막, 사진들이 종종 전시 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읽으며 나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와 같은 또래의 청년들은 자신의 안일함이 아닌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일념으로 젊음을 불태우고 있지 않은가. 대학 첫 해에 학생들끼리 조직된 챔버 오케스트라에 합류하여 연주회도 열심히 하였지만 나는 감히 타과 친구들에게 나의 연주회 소식을 알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 않아 명동성당 시위 중 대학생 한 명이 정치 정의를 외치며 할복 투신을 하는 일이 있었다. 조성만. 같은 학교 화학과 학생이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또 하나의 젊음이 생을 버렸다. 마음속에 또다시 커다란 징이 울려대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장래에 음악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이후로 음악은 내겐 다른 선택이 옵션으로 달려 있지 않은 인생의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서양음악은 이 모든 투쟁과 이 모든 몸부림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였고, 그 상관없음으로 하여 나는 괴리감과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였던가, 나는 안전하고 약간은 비겁한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배우기로 한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숲속의 방, 우리 시대의 철학, 강철 군화 등등… 책을 통한 세상 배우기는 실상 안전해보이나 내적으로는 안전하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이것은 나의 괴로움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는 오히려 약간 맛이 간, 그런 인간처럼 보이게 되었다.

80년대에 음대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답이 필요했었다. 음악,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단순 오락과 무엇이 다른가. 음악은 과연 이 척박한 세상에 필요한 것인가. 학우들이 위하여 죽어가는 노동자와 내가 하는 음악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와 같은 고민은 내게 일종의 화두수행과 같이 되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도 답을 찾지 못해 뭉개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어느 날 하나님의 은총처럼 내게 주어졌었는데 그때 그 기쁨이란, 그 안도함이란! 그것은 앞으로 내 삶을 음악과 함께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물론 나는 나의 조야한 깨달음을 늘어놓음으로 이 지면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혹 나눌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대학시절이란 참으로 포효하는 파도의 대해를 통과하는 듯한 자기 성찰, 자기 검증 그리고 자기 혁명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기를 보람 있고 의미 있게 보내게 되기를, 새로이 대학에 발을 내딛는 모든 이에게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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