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낙엽과 황혼

2012-09-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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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알고, 고독하지만 그 고독을 견디고 즐길 줄 아는 많은 덕을 지니고 있는 나무를 나는 사랑한다. 나무는 하늘이 준 힘을 다하여 널리 가지를 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힘을 쓴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고 묵도하는 나무를 보면 우리 인생의 삶과 너무 흡사하여 나무를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가 많은 미국에 와서 살면서, 나무의 덕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며 살고 있다. 겨울을 보내면서 과연 저 나무에 새싹이 돋아날까 하고 의심했던 나무에 여전히 새싹이 트고 금새 푸르러져서 참 기쁨과 위안을 우리에게 주며,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을 선사한다. 비온 뒤의 청량감, 하늘을 달리고 녹음 사이를 지나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우리 이민 생활의 고달픔이 완전히 달아나 버릴 때, 우리는 마음의 모든 상극과 갈등을 극복하고, 조화있고 질서있는 세계에까지 도달하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 가을에는 또 얼마나 현란한 모습의 낙엽이 우리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지 벌써부터 가슴이 울렁인다. 늘 푸르기만 하던 그 잎이 자신의 의무를 다 하고, 어느새 하나 둘 빨강, 노랑으로 물들고, 그 잎들이 지천으로 쌓여 우리 발길에 차이고, 그 찬란했던 꿈의 껍질이 되어 버린 낙엽을 보면서 황혼이 되어버린 우리 인생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막 살만한 고향 땅과 고국을 버리고 좀 더 낳은 환경에서 더 잘 교육시켜 보자고 어린 것들을 데리고 이민 길을 택해서 널리 가지를 폈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또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손자 손녀를 애써 키우고 있다. 환경과 여건과 시스템이 달라진 가운데에서 ‘김정일 할머니’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으르렁댄다. “게임하지 말라”“인터넷 많이 하지 말라”“ 그 시간에 책 한권이라도 더 읽어라”고 하며 얼마나 안간 힘을 쓰고 있는지.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하지 마옵시고 무릇 지킬만한 것 가운데 마음을 지키게 하옵시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게 하옵소서. 선이 악을 이기게 하옵시고 진리가 비진리를 물리치게 하옵소서"라고 하늘을 향해 날마다 부르짖는다.

낙엽(나무)과 황혼(인생)이 혹여 다른 점이 있다면, 나무는 영적인 생물이 되지 못하여 죽은 뒤에 다음에 태어날 새싹에 도움이 되는 거름이 될 것이고, 인생은 육신을 벗어 버리고 영생으로 훨훨 날아간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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