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밝은 미소를 보고싶다

2012-08-03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한 아이가 있다. 엄마를 따라온 10대 소녀는 키가 크고 예쁜 얼굴에 음전하기까지 하여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칭찬을 받았다. 공부도 잘하여 명문대를 갈 예정이라 했다.노래를 잘한다는 소문을 들은 엄마친구들이 노래 한번 해보라고 하니 어려운 자리였을 텐데도 불구, 수줍어하면서도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데 다들 그 자리에 프로 뮤지컬 배우가 온 줄 알았다.

엄마 친구들은 당시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한국 본선에 나가 가수가 되라고들 난리였다. 그 엄마와 아이는 그러겠다고 했는데 오디션 예선에 불참했다.그리고 대학에 간 아이는 더욱 멋있어졌고 너도 나도 미스 뉴욕선발대회에 나가보라고 권했지만 아이는 원서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톱탤런트, 톱가수감이던 아이는 대학 4년간 줄곧 공부를 열심히 했고 졸업반 시절, 세계적인 디자인 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부상으로 유럽 연수가 주어졌지만 갈 수 없었다. 장래가 보장되는 그 좋은 기회를 포기하며 아이는 펑펑 울었다.더 큰 문제는 졸업 후였다. 인턴으로 취직을 해도, 아이가 디자인한 제품이 정신없이 팔려나가도 차비 한푼 받지 못했고 결국 직장을 그만 두고 집에 눌러앉았다. 평소 명랑하고 상냥하던 아이는 당혹감, 괴리감에 더 이상 밝은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의 방에 틀어박힌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녹음기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다시 그 테이프를 틀어 들어보다가 다시 또 녹음하며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10대초반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살러온 아이는 자신의 체류 신분에 대해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대학 원서를 쓰려고 보니 자신이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었고 자신의 처지가 어떤 지 알게 되었다.

“나는 공부만 하고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가 법을 어기는 사람이 되다니?” 하는 아이의 말에 부모의 가슴은 찢어졌다고 한다.사실, 이웃사촌이나 가까이 지내며 별 별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친구의 신분이 시민권자인지, 영주권자인지, 서류미비자인지 묻지 않는다. 그냥 사람을 사귀는 것이기에 굳이 ‘당신 신분이 뭐유?’ 하고 물어보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이웃의 자녀가 학교에 가거나 취직을 할 때 고통 받는 것을 보면 아하, 서류미비자였구나 하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11월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기소재량권으로 지난 6월 불법체류 신분 청소년 추방유예 구제정책을 발표, 오는 15일부터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조치가 본격 시행된다고 한다.

1일 시행지침을 발표한다고 했는데 2일 현재 아직 구체적인 공식발표가 없어 추방유예 대상자인 청소년과 가족들은 현재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신청자격 증명서류, 접수방법, 처리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공식발표가 이번 주 안에는 있어야 할 것이다. 16세 생일 이전에 미국에 입국하여 최소 5년이상 거주해왔고 고등학교 이상을 졸업했거나 군 복무를 마친 30세이하라는 조건에 해당되는 한인이 미 전국적으로 1만6,000명 정도 될 것이라 한다.

“서류접수가 시작되면 바로 달려가려고 구비서류가 될만한 것을 모두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2년간 워크퍼밋을 받지만 그후 다른 대통령이 사인 하나로 이 구제책을 취소할 수도 있다. 신상정보가 공개되었으니 향후 이민단속 또는 추방에 이용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이들의 걱정처럼 이번 추방유예 구제정책이 아무런 후유증 없이, 선거 재선을 위한 제스처가 아니라 실질적인 구원책이 되어 잘자란 젊은 인재들이 아까운 재능 썩히지 말고 신나게 일하며 미국의 발전에 한 몫 하는 것을 보고 싶다. 미정부 역시 부모의 결정으로 인해 자녀가 불행에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고통이 자녀에까지 미치지 않고 아메리칸 드림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이번 청소년 추방유예 구제책에 가슴 졸이고 있을 그 아이가 생각났다. 앳된 모습이 어느새 훌쩍 자라 20대 후반 숙녀가 된 그 아이, 부디 만사 해결되어 다시 그 밝고 예쁜 미소를 찾기 바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