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참담한 심정

2012-07-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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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누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임기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사자성어 혹은 고사성어(故事成語)다. 역대 한국의 대통령치고 친인척비리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이명박대통령은 예외일 것이라 믿었는데 한 통속이니 이 비참한 한국 대통령들의 관례를 어떻게 해야 깨뜨려 버릴 수가 있을까.

상왕이라 불렸던 이상득 전의원마저 쇠고랑을 차고 감방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동생인 대통령의 마음이 어찌 안 불편할 수 있으랴. 저축은행 비리로 인해 수많은 서민들이 피해를 입고 생계마저 위협을 당할 때 이상득 전 의원은 돈을 받고 저축은행을 감싸고돌았단다. 대통령의 형으로써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그는 저지르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사를 받고 검찰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목숨을 내놓음으로 인해 가족들과 인척들의 비리를 더 이상 수사하지 않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사는 지금도 계속(딸 문제)되고 있다. 대통령의 자살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도 역사의 심판은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권이 물러난 다음에 이대통령 마저 역사의 심판을 받고 감방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부터 감방 들어갈 준비를 해 두는 것도 어떨까. 임기 말 불거지고 있는 측근과 친인척비리를 비롯해 덮어진 내곡동사건과 민간인 불법사찰문제 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나온다면 이대통령도 역사의 심판은 비켜가지 못할 일이다.

하늘을 나는 새까지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권력. 한 번 권력의 맛을 맛보면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 권력인가 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으로 있을 때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한 교회의 장로다. 지인의 소개로 종교성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대통령후보감이라 하여 많은 동포들이 그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을 때였다.

무릎을 맞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와의 대담은 시작됐다. 서울시장으로 과감하게 펴 온 그의 정책은 대통령후보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듯 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의 이마는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반지르르하게 빛나고 있었다. 전혀 부정적이지 않는 그의 마인드는 대통령이 되고도 남을만한 자신감을 기자에게 보여 주었다.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그 당시 그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동포들이 그의 은택을 받고 한국을 기세 좋게 드나드는 것을 쭉 지켜보았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뉴욕을 다시 방문했을 때 또 수많은 동포들이 그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했다. 눈도장은 손 한 번 잡아 보는 것인데 그러나 서울시장과 대통령은 하늘과 땅 차이, 전과 같지 않았다.

임기 말 친인척비리와 “몸통이 대통령”이라는 사건들이 터지고 있는 이 때, 그 당시 눈도장을 찍고 헤헤거리던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있음을 본다. 권불십년이 아니라 권불오년, 이제 권력이 다했음을 말해준다. 권력에 아부했던 사람들은 이대통령은 차버리고 다음 정권의 권력으로 이어지려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훤하게 내다볼 수 있다.

이게 인심인가. 최초로 여성대통령이 나올법한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선 너나 할 것 없이 그 사람의 치마폭에 쌓여 보려고 안간힘, 죽을힘들을 쓰고 있다. 한심할 정도가 아니라 눈뜨고 못 볼 정도다. 그것이 권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에 빌붙어 한 자리하고 한 자리 하는 동안 평생, 아니 자자손손 먹을 걸 장만하려 할 것이다.

몇 일전 방송에서 김항식총리의 말이 기억난다. 국회의원의 질문.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비리가 터진 이 때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에 김 총리 왈, “대통령도 이 일로 참담한 심정에 놓여 있다”고. 참담한 심정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이다. 저축은행사건으로 온 재산을 날린 서민들의 참담함을 누가 보상하랴.

올해 한국 교수신문이 선정한 이대통령에 대한 사자성어는 엄이도종(掩耳導從)이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란 뜻에 “자기 잘못은 생각지 않고 비난이나 비판만 두려워한다”란 의미다. 이대통령도 잘한 것은 있다. 그러나 통치 전반을 볼 때 분명히 마이너스감 대통령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임기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심기일전(心機一轉)으로 임기를 다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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