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토리나무의 교훈

2012-06-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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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의회에서 번지르르하게 연설을 한 영국의 새내기 정치인이 연설의 대가인 윈스턴 처칠에게 다가와서 연설 평을 부탁했다. 처칠은 뜻밖에도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나!” 라고 충고했다. 청산유수같은 연설보다 좀 어눌한 연설이 감동을 준다. 사람도 너무 완벽하면 매력이 없고 좀 부족한 듯해야 인간미가 있다. 물이 조금씩 새는 항아리 주위에 풀이 자라고 꽃이 핀다. 틈새가 하나도 없는 항아리는 황무지를 만들 뿐이다. 결함이 오히려 장점이요 생명력이다.

쓸모있는 것보다 쓸모없는 것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교훈이 있다. 중국고전 ‘장자’에 나오는 도토리나무 이야기다. 키가 산만큼 커서 그 그늘에 수천마리의 소가 쉴 정도라고 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한 장인목수가 이 나무를 본 후 “쓸모없는 잡목이군!” 하고 돌아갔다. 크지만 꾸불꾸불해서 기둥이나 배는 물론 관도 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목수의 꿈에 도토리나무가 나타나 그를 나무란다. “그대는 내가 좋은 재목으로 쓸모 있는 나무였기를 바랬는가? 그런 나무들은 벌써 다 베어져 없어졌네. 나는 원래 쓸모없기를 소원했지. 몇 번이고 베어질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소원이 이뤄졌고 쓸모없음이 나의 큰 쓸모가 되었네. 만약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리 커질 수 있었겠는가?” 보잘 것 없는 것이 오히려 쓸모 있는 것이 될 수 있고, 하찮아 보이는 것이 도리어 삶을 지탱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주위엔 성공해서 잘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실패를 거듭하며 뒤쳐진 사람들도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갔거나 명문대학을 졸업해서 부모에게 자랑거리를 안겨주며 효도(?)하는 자녀, 사회에 나와서도 뛰어난 수완으로 돈을 잘 버는 자녀들이 있는 반면, 머리가 별로 명석하지 못해 명문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자녀, 능력이 없거나 운이 나빠 돈벌이를 못하는 자녀들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 자녀와 부모들이 기죽거나 절망할 이유는 없다.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꼭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은 아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멀리 보고 묵묵히 뛰어가는 경주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는 사람은 근시안이다. 보이지 않는 넓고 큰 길, 멀고 긴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투지와 인내가 성공의 문을 여는 열쇠다. 보잘 것 없는 것이 그럴싸해 보이는 것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알찬 열매를 거두는 경우를 흔히 목격한다. 하찮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고 다듬으면서 살아가면 거기서 희망이 샘솟고 꿈이 서리고 생명력이 움튼다.
못 하나를 잃는 건 나라를 잃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 못 하나를 잃으면 말발굽 하나를 잃는 것이요, 이것이 전투 말 한필을 잃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고, 유능한 장수가 탄 말이라면 장수를 하나 잃는 것이오, 그 장수 때문에 전쟁에서 패할 수 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한다는 얘기다. 조금 부족한 내 자식이 훗날 그 못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한국인들은 돈 잘 버는 사람, 공부 잘 하는 학생에게만 박수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해온 방식에 너도 나도 편승하려 든다. 한마디로 주체성이 없다.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는 “실패해봐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세 번이나 실패한 후 성공한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특히 한국인들이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격려하지 않고 오히려 조소하는 경향이 있음을 의아하게 여겼다.

능력이 모자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웨일스의 말처럼 무슨 일이던지 최선을 다하면 다른 사람보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보다 좋은 길을 가는 것이다. 잘 사는 남의 집, 공부 잘하는 남의 자식과 자기 처지를 비교하는 순간부터 삶은 불행이고 실패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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