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각하기 나름

2012-05-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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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작년 7월 시카고에 8미터 높이의 마릴린 먼로의 동상이 등장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왜 뉴욕이 아니라 시카고지?” 했었다. 마릴린 먼로가 누구인가,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먼로가 미 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성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시카고 중심가인 미시간 애비뉴 파이오니어 코트에 전시되었던 이 먼로 동상이 7일 철거된다고 한다. 이 조형물은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가 뉴욕의 지하철 환기구 바람에 날리는 하얀 원피스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잡아 누르는 포즈를 하고 있다. 설치 당시부터 지금까지 ‘선정적이다’, ‘상업적이다’, ‘시카고 건축물 및 조경에 어울리지 않는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조형물이다’는 등 수많은 비판을 받았고 낙서는 물론 오른쪽 다리 상단에 붉은 페인트 세례를 받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온라인을 통해 먼로 동상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 총 투표자 3,536명 가운데 단 40%(1,416표)가 ‘좋은 예술품’이라고 응답했고 다수인 60%(2,120표)는 ‘천박한 조형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시카고에서 마릴린 먼로 동상은 왜 이리 구박을 받았을까. 높은 고층빌딩을 배경으로 치맛자락
을 붙잡고 서있는 새하얀 동상 사진을 보고 참으로 눈이 시원하게 열렸었는데, 이 차가운 조각상에서 무슨 관음증이란 단어까지 나오는지 모르겠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7년만의 외출’은 1950년대 미국 코미디 영화로 마릴린 먼로의 전반기 대표작이다.

당시 최고 인기코미디언 톰 이웰(리처드 셔먼역)이 같은 아파트 2층에 이사 온 금발 미녀 마릴린 먼로와의 로맨스를 꿈꾼다. 과대망상증에 걸린 남자와 약간 모자라는 여자는 영화관에서 함께 나와 지하철 환기구 위에 섰는데 지하철이 지나가며 일으킨 바람이 스커트를 들어 올리는 이 스틸컷은 세계 영화사에 남는 명장면 중 하나이다.이 장면은 맨하탄 이스트 51가~52가 렉싱턴 애비뉴 지하철 환기구 위에서 촬영됐다고 한다.뉴욕 아스토리아의 영상 박물관에는 바로 이 장면을 영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관람객이 마릴린 먼로 얼굴 위치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서있으면 바로 앞 화면에 바람에 날리는 새하얀 드레스
를 잡고선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자 관람객들은 누구나 그 자리에서 키득거리며 3초 동안 마릴린 먼로가 된다.


맨하탄 53가의 현대뮤지엄에도 팝 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이 제작한 ‘골드 마릴린 먼로’(1962)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 앞에서 관광객들은 너도 나도, 짧은 금발 한 얼굴을 약간 뒤로 치켜들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붉은 입술로 미소 짓는 먼로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또 전 남편인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 등 뉴욕과 연관된 마릴린 먼로의 흔적은 많다. 조형예술가 J. 슈어드 존슨의 이 작품이 뉴욕에 오면 뉴요커의 많은 사랑을 받을텐데 싶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아일랜드나 거버너스 아일랜드, 혹은 루즈벨트 아일랜드, 케네디 공항 또 센트럴 팍도 그 후보지에서 빠질 수 없다. 헬리콥터나 비행기에서 동상을 내려다보면 서 누구나 ‘아, 뉴욕으로 왔구나’ 하는 상징물이 될 수도 있다.

오만가지 성적 표현물이 넘쳐나는 뉴욕에서는 이 정도 갖고 아무도 선정성 있다고 하지 않는다. 뉴욕에선 어떤 아방가르드 작품이라도 ‘예술의 다양성’, 혹은 ‘작가의 넘치는 상상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원래 이 동상은 봄까지 전시될 예정이었다는데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서둘러 철거되는 것을 보고 참으로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이 이리 다를 수도 있구나 싶다.비단 이번 동상 건뿐이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가 천차만별일 것이다.어떤 것을 기준으로 놓고 판단하느냐, 어떤 각도와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 다르다. 그러니 전적으로 자기의 생각과 관점에서만 판단할 일도 아니다. 선정적이라고 보는 사람은 죽어도 선정적이겠고, 동상은 동상일 뿐이다 하면 그것도 그렇다. 세상사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받아들이는 것도 제각각, 그래서 마릴린 먼로 동상이 어느 도시로 이전될 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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