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에겐 왜 민족지도자가 없나

2012-03-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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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

1958년 봄, (연방의회)의사당의 돔이 바라다 보이는 워싱턴시내 한 허름한 식당에 유대인으로 보이는 서너 명이 머리를 맞대었다. “만일에 미국이 유럽전쟁에 하루라도 빨리 개입했으면 수만 명의 동족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공감을 갖고서 비장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증언이 연일 언론을 통해서 시민들에게 전달되고 있었으며 수천 명씩 단위로 사형장에서, 개스실에서 집단 처형된 생생한 장면이 탈출한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유대인들을 끔찍하게 했다.

의사당을 바라다보면서 이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책임지도록 하자!”라고 의기투합했다. 에이팩(AIPAC: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의 시작이다. 에이팩은 지난 60여년 동안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과 전쟁을 치룰 때 마다 미국을 움직여서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토록 했고 미국내 유대인들을 조직해서 전장으로 보냈다. 2012년 에이팩 연례총회가 지난 3월4일부터 나흘 동안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다.


90을 목전에 둔, 전 세계 유대인들의 살아있는 (전설적인)영웅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유대인공공정책위원회 연례총회를 찾았다. 연단에 나오기 전에 그를 소개하는 영상물이 10여분 상영되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폴란드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왔다. 유대인이란 이유로 박해를 받는 것을 피하는 피난이었다. 그는 16살 소년시절부터 시오니즘 운동에 뛰어 들었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비빗 벤그리온’의 보좌관이 되었다. 사선을 넘나들며 밴그리온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그를 경호하고 보좌했다.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건국 후 아랍국가와 치룬 6번의 전쟁을 지휘해서 늘 승리로 이끌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은 전쟁이 늘 기회였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오직 유대국가 건설을 위한 그의 80년 지속적인 투쟁이 오늘날 전 세계 유대인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를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1만 5000의 유대계 지도자들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서 흐느꼈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침묵의 눈물바다가 되었다.

90의 노구를 이끌고 연단에 나타난 구척장신의 ‘시몬 페레스’ 대통령이 환하게 웃었다. 그의 미소는 전 세계 유대인들을 완벽하게 감싸안기(감동과 결집)에 충분했다. 어린학생, 청 ^ 장년, 남녀노소, 거동이 불편해서 휠체어에 의지한 노인들까지도 침묵의 눈물로 그를 맞았다. 군중으로부터의 이만한 (완벽한)존경심은 더 이상 없다.

식민지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은 ‘민족수난’의 근대사로 보면 우리도 이스라엘과 비슷하다. 대한민국도 건국60년이고 이스라엘도 60년의 역사다. 전쟁을 치렀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빈곤을 탈출한 현대사가 이스라엘과 거의 유사하다. 더구나 분단국가 출신의 소수이민자로 미국 내에서 한국인들은 그 비장함이 이스라엘 못지않게 진행형이다. 미국의 자기 동포를 방문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자기 동포 2세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데 재미동포를 찾는 한국의 지도자는 늘 무미건조하다. 똑같은 60년인데 한국엔 아직 민족지도자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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