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탐욕과 신뢰

2012-03-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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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2008년 가을 금융위기를 도발한 월가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3년 반만에 파산 보호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6일 리먼 브러더스는 이날부터 파산 보호에서 벗어났다면서 채권단에 빚을 청산하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내달 17일 650억 달러의 빚을 청산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여 오는 9월에는 2차 빚잔치를 할 계획이라 한다. 리만은 파산 보호에서 벗어남에 따라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됐으나 빚 청산과 무더기 소송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세계 경제를 곤두박질치게 만든 주범 리먼 브러더스 뉴스를 보면서 얼마 전 본 J.C. 챈더 감독의 영화 ‘마진 콜(Margin call)’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금융 위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한 투자은행이 자신의 회사가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하면서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의 긴박한 24시간을 보여준다.
정리해고 된 에릭이 ‘조심하라’며 주고 간 자료를 점검하던 말단 직원 피터는 회사의 재정상태가 엉망이고 그대로 두면 주식가치가 떨어져 한순간에 망할 징조를 포착한다. 술집에 간 팀장을 부르고 팀장은 책임자-사장-회장 순으로 고위간부들이 모두 모여 한밤중에 비상대책회의가 열린다.

결국 ‘오늘 당장 현재 보유하고 있거나 투자하고 있는 주식을 모두 처분하라’는 지시가 내리자 주식거래 총책임자인 케빈 스페이시(샘 역)은 ‘우리는 살지만 전 세계의 주식시장을 강타할 것이다’ 고 잠깐 양심적인 면을 보이나 그뿐, 윗선의 지시를 따른다.직원 60명은 자신들에게 보장된 보너스 130만 달러를 받기 위해 내일오후면 휴지조각이 될 주식을 팔고자 딜러, 브로커, 개인 고객에게 일제히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남이야 망하든 말든, 세계 경제야 바닥을 치든 말든 말단 직원부터 고위 임원까지 한통속이 되고 오후 3시59분 모든 일은 완수된다. 이는 무섭고도 치밀하며 완벽한 사기다. 그 결과 전세계에 몰아친 금융위기는 수많은 개인 투자가들이 돈을 잃고 서민들은 집을 잃고 비즈니스는 파산하여 아직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인사회에도 투자하던 주식, 증권, 채권이 바닥을 치자 비즈니스까지 접고 주급장이로 취직한 사람, 해고되자 집 모기지가 밀리면서 은행 차압통보를 기다리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사연이 널려있다.문제는 이런 일을 빚은 이기적인 인간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고위급 간부들은 어떻게 다시 돈을 벌 까 고민할 뿐이다. 이들은 여전히 연말이면 수백만, 수천만 달러의 보너스를 챙기며 세계
금융의 중심지에서 ‘투자 전문가’, ‘금융인’으로 호화롭게 살고 있다. 맨하탄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고층빌딩의 아름다운 바에서 와인 잔 기울이며 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양심, 도덕 모두 팔 것이다.

등장인물 중에 중간관리직인 폴 베타니(윌 에머슨 역)가 하는 말이 있다. “누가 뭐라건 저 사람들은 돈을 안 잃어, 나머지가 다 잃어도 저 사람들은 안 잃어” 그는 또 후배가 작년에 받은 250만 달러로 뭐했냐고 묻자 이렇게 말한다. “250만 달러 중 세금 125만 달러, 대출금 30만 달러, 부모 생활비 15만 달러, 그 외 의상, 차량유지비, 외식비, 유흥비, 기타 40만달러는 우울한 날의 비용으로 썼지.” 그야말로 자신이 소모품으로서 용도가 다 할 때까지 다시 돈을 벌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것이다.

한편 지난 3년간 금융위기 속에서도 파산하지 않고, 직원을 해고하지도 않고 살아난 회사들이 있다. 직원들과의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직원들을 해고하는 대신 다 같이 살아 남기위해 모든 직원의 근무시간을 줄였다는 회사도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은 마주칠 때마다 서로 쳐다보면서 웃을 것이다. 작은 일에도 함께 울고 웃으며 그야말로 사람이 사는 것처럼 아기자기, 재미있게 살 것이다. 돈은 많지만 ‘탐욕’으로 인해 초조하고 불안한 삶, 돈은 좀 부족하지만 ‘믿음’과 웃음이 있는 삶, 어느 쪽이 더 살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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