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물

2011-12-30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면서 가족과 친지, 이웃과 친구 간에 수많은 선물이 오갈 것이다.정말 갖고 싶었던 것을 선물로 받아서 기쁘기도 하지만 반갑지 않은 선물도 있다. 그 중에는 미국 작가 오 헨리(O. Henry)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서로 빗나갔지만 부부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는 선물도 있을 것이다.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인 오 헨리는 스스로 ‘지하철 위에 건설된 바그다드’ 하고 묘사했던 뉴욕에 살면서 뉴욕 시민들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단편을 많이 썼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한 가난한 부부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고민에 빠진다. 선물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진 것은 1달러87센트뿐, 아내는 황금빛 머리칼을 잘라 남편에게 줄 백금 시곗줄을 산다. 남편은 할아버지 유품인 금시계를 팔아 보석 박힌 머리빗을 산다. 각자 상대방에 줄 선물을 들고 집안에서 서로 만나는 순간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긴 머리칼을 자른 아내는 머리빗이 필요 없고 시계를 팔아버린 남편에게는 시곗줄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곧 머리칼이 자랄 것이라고 남편을 위로하고 남편 또한 간단하게나마 크리스마스 잔치를 벌이자고 한다.지극히 감상적인 단편이지만 학창시절 누구나 감명 깊게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가진 돈 1달러 87센트 안에서 선물을 사지 못했을 까 싶다. 지금도 1달러짜리 선물은 얼마든지 있다. 무리하지 않고 형편대로 샀더라면, 그리고 서로 없는 것 아는데 선물을 안하면 어떤가, 굳이 비싼 선물을 주었다고 해서 사랑을 확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선물은 자신의 처지에 맞게 하면 되는 것이지, 무리하게 하면 받는 사람 마음도 불편하다.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지내면서 가족, 친지, 이웃과 선물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장기간의 불황에 지친 사람들이 다른 해에 비해 생활필수품을 많이 하고 있는 것같다.


받는 입장에서도 다른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비누와 샴푸와 린스, 세제 등이 좋은 것이 집안에 두고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일상용품이므로 당장 생활비가 절약되는 것이다. 이처럼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선물도 있지만 별로 받고 싶지 않은 선물도 있다.크리스마스가 되고 연말이 되면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사람에게서도 카드가 날아온다. 신경 써서 구입한 다양한 디자인의 카드와 그 안의 자필을 보면서 글씨를 잘 쓰네, 혹은 글씨가 왜이래, 공부 못하는 사람처럼 썼네 하면서도 천방지축인 글씨를 보면 미소가 나왔다. 그리고 울긋불긋한 카드를 문 앞에 붙이면 훌륭한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는 인쇄된 글귀에 사인만 해서 보내더니 그나마 올해는 거의 모든 카드가 이메일로 오고 있다. 수십 명에게 한꺼번에 보내진 카드 속에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똑같은 문구가 동시에 날아든다. 때로 이메일 속의 카드를 다운 받으려면 용량이 큰 경우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는지 기다리다가 나중에는 포기하고 그냥 지워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메일 카드 속에 수십 개 이메일 주소를 한꺼번에 보게 된다. 여기 포함된 내 이메일이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되어도 되나 싶다.

당신은 그나마 연락했느냐, 이메일이나마 잊지 않고 보내주니 고마운 일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직접 손으로 쓴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받고 싶다.삐뚤거리는 글씨로 단 몇 줄 쓴 글귀는 그 사람의 성품과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보인다. 또 카드를 볼 때마다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메일 받아 읽고 바로 지우는 세대가 아닌 아날로그 방식을 아직도 고수하는 것이 시대에 한참 뒤떨어졌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손으로 쓴 카드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다만 걱정이 내년에는 나 역시 모든 사람에게 이메일 카드를 보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점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